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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가주의 ‘유용한 불’ 작전

주말에 LA동부에 있는 피터 샤버룸 공원으로 하이킹을 갔다. 예년엔 허리 높이 정도였던 겨자꽃이 올해는 키 높이를 넘어 자랐다. 키만 큰 것이 아니라 그 어느 해보다 꽃이 만개해 카메라만 대면 사진이 됐다. 황량한 느낌이 들곤 했던 샤버룸 공원은 한 철 비로 온갖 색이 피어난 청춘의 땅으로 빛났다.     올해 초 가주에 내린 폭우는 10년가량 이어진 가뭄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 바닥을 드러냈던 호수는 다시 찰랑거렸고 산마다 눈이 쌓였다. 비는 남가주 전역을 들꽃으로 덮어 몇 년 동안 코로나19로 지친 많은 이들을 위로하는 듯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비와 꽃이 피운 생명의 아름다움을 다 만끽하기도 전에 지레 여름 산불 걱정이 새어 나오고 있다. 봄꽃이 지기도 전에 여름 산불을 걱정하다니. 기후변화는 봄꽃 뒤에서도 어른거린다.   머지않아 여름이 오고 땡볕이 쏟아지면 봄철 대지를 덮었던 꽃과 초록의 덤불은 물기를 잃고 바짝 마른 회색빛 대궁으로 변해 언제든 산불을 나르는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그 어느 해보다 잘 자란 꽃과 덤불은 그 어느 해보다 불쏘시개가 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연방항공국의 위성 영상에 따르면 샌디에이고에서 초목 지역은 2022년 약 25%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30%를 넘어섰다.   이것이 꼭 기우는 아니다. 2016년 겨울 가주에는 지역별로 예년보다 30~50% 많은 비와 눈이 내렸다. 2017년 10월이 되자 늘어난 불쏘시개의 영향으로 산불 피해지역은 전년의 2배가 넘는 150만 에이커에 달했다.   다가올 여름의 땡볕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는 전조는 이미 국내외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주와 같이 태평양 연안의 서부주인 오리건과 워싱턴주는 예년보다 25~30도가 높은 90도대 초반까지 올라갔다. 가주의 북부 지역까지 포함하면 1200만 명이 폭염주의보 대상 지역에 거주한다. 그 위로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와 앨버타 일부 지역에는 특별 기상 주의보가 발효됐다. 캐나다는 이미 150건의 산불이 발생해 110만 에이커가 탔다. 이들 지역에는 90도대 더위와 산불이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다. 지역적으로 볼 때 가주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동남아시아와 인도, 중국 등 아시아 12개국은 때 이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태국의 일부 지역은 사상 최고 기온을 여러 차례 갱신하며 113.7까지 치솟았다. 한국도 15일 낮 최고기온 93도를 기록하며 여름 폭염을 예고했다.     유럽의 스페인과 포르투갈, 북아프리카의 모로코와 알제리도 4월에 역대 최고 기온을 갱신하며 기후변화가 불러온 더위와 싸우고 있다. 스페인은 폭염 시 야외작업 금지 조치 시행을 예고하고 나섰다.     우기의 푸른 덤불이 건기의 산불 발화제가 되는 것을 잘 아는 가주 정부는 지난해 전략적 계획(Strategic Plan)을 세웠다. 2025년까지 매년 덤불 지역 40만 에이커를 제거하는 ‘유용한 불(Beneficial Fire)’ 개념을 도입했다. 발화 지역을 미리 제거해 산불 발생과 확산을 막겠다는 계획이다. 불이 나기 전에 불을 질러 없애는 것이다. 가주 정부의 계획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매년 100만 에이커까지 미리 불을 내 제거한다.     기존의 방어적이고 수동적인 대응을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전환한 가주의 산불 대책은 사실상 올해 첫 시험대에 오른다. 특히 덤불이 많이 자란 해인 만큼 효력을 발휘하기 바란다. 기후학자들은 일찍 찾아온 올해의 폭염이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는 엘니뇨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내년에 더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한다. 가주의 유용한 불 계획이 산불 진화의 전환점이 됐으면 좋겠다. 안유회 / 뉴스룸 에디터·국장프리즘 가주의 작전 산불 피해지역 가주의 북부 여름 산불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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